"센세이셔널" 극찬..한국인 첫 세계 1위 바리스타

|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1위 전주연씨

 

 

바리스타 전주연이 지난 14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추출한 커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평범함을 깼다."
지난 11~14일(현지 시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BC)에서 1위를 차지한 전주연(32)씨는 이렇게 말했다. 전씨는 "인테리어 연출부터 프리젠테이션 주제, 심사위원과 커뮤니케이션 등을 파격적으로 꾸몄다"고 했다.

 

지난 14일(현지 시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주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참가 선수는 3개의 테이블을 쓸 수 있는데, 낮은 테이블을 택해 심사위원들이 테이블에 걸터앉아 나를 마주 보게 했다. 선수와 심사위원이 아니라 바리스타가 소비자를 응대하는 것처럼 꾸몄다. 전씨는 "심사위원들이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시연'이라며 '센세이셔널하다', '힙(Hip)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올해 20회째 열린 WBC엔 각국에서 예선을 거친 55개국 국가대표 바리스타가 경합을 벌였다. 예선까지 합치면 참가 선수는 약 3000명에 달한다. 17일 미국 뉴욕에 있는 전씨와 전화 인터뷰했다.

 

바리스타 전주연이 지난 14일(현지 시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심사위원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사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WBC는 단순히 커피를 잘 뽑는 사람을 가리는 대회가 아니다. 5명의 심사위원에게 에스프레소·밀크음료·첨가음료 커피를 각 4잔씩 제공하며 '내가 가진 커피 철학'을 15분 이내에 설명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예선·준결승·결승 세 번 거친다. 지난해 한국 대표로 참가해 14위에 그친 전씨는 올해 '탄수화물이 커피의 향미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를 들고 나갔다.

전씨는 "탄수화물은 커피의 단맛을 결정하는 요소다. 그만큼 밸런스가 중요하다"며 "바리스타들도 생소한 주제라 그런 지 심사위원들도 집중해서 들었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콜롬비아산 커피를 선택한 것도 적중했다"고 말했다. 커피는 지난해 직접 방문해 산 라팔마 엘투칸 농장의 '씨드라' 품종을 선보였다. 말린 자두와 말린 포도 향이 나는 풍미가 좋은 커피로 지난해 산지를 방문해 직접 테이스팅을 거쳤다. 대회용 커피는 생두가 아닌 볶은 커피를 가져간다.

WBC로 가장 유명해진 바리스타는 2003년 우승한 폴 바셋(호주)이다. 이후 매일유업은 폴 바셋과 로열티 계약을 맺어 한국에 카페 전문점 '폴 바셋'을 냈다.

폴 바셋처럼 '전주연' 카페가 생겨날까. 전씨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스페셜티 커피를 하는 사람은 개인이나 소속 카페의 수익보단 산지 농부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농부는 좋은 커피를 생산해 제값을 받고, 바리스타는 농부로부터 좋은 생두를 얻는 게 목적"이라며 "앞으로도 개인 브랜드 카페보다는 산지 농부와 협업에 더 열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폴 바셋 카페 브랜드는 한국에만 있다. 또 WBC는 애초 상금이 없다. 명예만 있을뿐이다.

2007년부터 WBC에 참가한 한국이 우승을 차지한 건 처음이다. 커피 업계는 "한 명의 바리스타 덕에 한국 커피의 위상이 높여졌다"고 평가했다.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는 "폴 바셋이 우승할 당시 WBC는 작은 대회였다. 지금은 규모나 위상이 그때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며 "전 세계 커피 시장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종호 한국커피품평협회장은 "모든 게 영어로 진행되는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게 더 의미있다. 한국 바리스타의 수준이 여러 면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지난해 런던 대회에 나가기 전 두 달 정도 어학연수를 했다. 한국 밖에서 공부한 건 그게 전부다.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게 가장 어려웠지만, 한국에서 많이 준비해간 덕에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바리스타 전주연이 부산 스페셜티 커피 카페 '모모스'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사진 모모스]

 

전씨는 대학 2학년 시절 카페 '알바'로 커피에 입문해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거머쥐며 십여년 만에 '거위의 꿈'을 이뤘다. 졸업 후 부산의 스페셜티 커피전문점 '모모스'의 창업 멤버로 합류해 스페셜티 커피라는 한 우물만 팠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기타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성들의 허벅지를 탄력있게 만드는 운동  (0) 2019.04.20
편의점의 천사  (0) 2019.04.20
칠면조판 <언더독>  (0) 2019.04.18
축구공을 찾아라!  (0) 2019.04.18
광고로 찌든 블로그, 솔직함을 되찾아라  (0) 2019.04.13
And

법원 나서는 조윤선

|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정부의 불법 보수단체 지원(화이트리스트) 의혹으로 기소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뒤, 법원 밖으로 나서고 있다.

서울고법은 이날 '조윤선' 전 수석에게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2019.4.12

saba@yna.co.kr

 

And

영화배우 '이수진' - 산정 성벽에 촛불 밝힌 '요정의 기원'

|







선데이서울 촬영 때, 장소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물론 지금보다는 자동차수도 훨씬 적었지만,

아무 곳에서나 촬영할 수는 없었다.

 

몸을 노출하고 촬영을 해야 하니까,

배경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붐비는 장소에서는 촬영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수영복을 입고 촬영을 하다 구경꾼이 몰려들어

더 이상 촬영을 못하고, 장소를 옮겨 다닌 기억이 난다.

 

수영복도

수영장이나 바닷가에서 촬영을 하면 야하지 않지만,

산이나 바위 같은 곳에서 촬영하면 야하게 보인다.

 

요즘도 그렇지만,

사진기자들은 멋진 사진 한장을 찍기 위해

심야 등산도 불사한다.

 

‘빨간 앵두’ 시리즈로

뭇 남성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던 영화배우 출신이자,

지금은 가수 '설운도'의 알뜰살뜰한 부인으로 더 잘 알려진

'이수진'의 화보를 촬영하기 위해 북한산에 올랐다.

그것도 한밤중에!

 

간편한 평상복 차림으로 등산길에 나선 '이수진'은

산 정상에서 매서운 밤바람을 참아내며 드레스로 갈아입은 뒤,

도심의 야경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모해 보이지만,

'이수진'이나 사진기자 모두 열정 하나만은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And

[그 배우의 섹시그래피] ‘동/서양 조화된 마스크’ 이수진(설운도 와이프)

|

 

 

 

 

▲ 영화 <캬바레 부인>의 한 장면.

  원안은 <호호전>(위)과 <삿뽀로의 밤사냥>(아래).

 

수많은 여배우들의 춘추전국 시대를 이루던 1980년대 중반, 이수진의 등장은 작은 충격이었다.

 

사극과 현대극이 모두 가능한,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마스크를 지녔던 그녀는 글래머의 계보를 이으면서 <빨간 앵두> 시리즈의 실질적인 안주인으로 위세를 떨쳤다.

 

1990년 가수 설운도와 결혼하면서 은퇴한 후 연기 활동을 접은 이수진. 5년이란 짧은 활동 기간이었지만, 마니아들 사이에 그녀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1980년대 한국 에로 영화의 지형도를 그릴 때 1982년은 상징적이다. 이 해에 충무로는 세 편의 에로 시리즈를 내놓는다.

 

<애마 부인> <빨간 앵두> 그리고 <반노>.

 

<반노>는 <반노 2>(1984)로 마감되면서 단명했지만 가장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었던 시리즈. 그리고 <애마 부인>과 <빨간 앵두>는 양대 산맥이다.

 

1996년까지 13편이 이어졌던 <애마 부인> 시리즈는 <파리 애마>(1988)와 <집시 애마>(1990)의 번외편까지 낳은 반면, 박호태 감독이 단 한 번도 메가폰을 놓지 않았던 <빨간 앵두> 시리즈는 1994년까지 8편이 이어졌다.

 

성적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유부녀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애마 부인>과 <빨간 앵두>는 그 톤이 달랐다. <빨간 앵두> 시리즈는 좀 더 거칠고 좀 더 축축했다.

 

특히 <빨간 앵두 2>(1985)는 1990년대 에로 비디오의 단초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한지일이 이후 ‘한시네마타운’을 설립해 내놓은 <정사 수표> 시리즈는 그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가 제작한 <젖소 부인 바람 났네 1, 2>(1995)는 <빨간 앵두 2>와 매우 흡사한 구조를 띤다.

 

8편의 시리즈가 나왔지만 유독 2편(그리고 3편)에 관심이 몰리는 건 단연 이수진(본명 : 이은경)이라는 배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그녀는 회계학을 전공한 후, 패션을 공부하며 약 5년 동안 ‘샤넬 리’라는 이름으로 모델 활동을 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이수진’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에 도전한 그녀의 첫 작품은 <밤마다 천국>(1985). 디자이너로 등장하는 그녀는 여러 남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조금씩 자아를 찾아간다.

 

<안녕 도오쿄>(1985)에 이어지는 <빨간 앵두 2>는 그녀의 존재감을 확고하게 다졌다.

 

이 영화에서 돈 많은 남자의 젊고 아름다운 후처로 등장하는 이수진은 남편의 젊은 비서(한지일)와 관계를 맺으면서 죄의식에 시달린다.

 

많은 노출을 하진 않지만 분위기를 야릇하게 만들었던 건 당시 한국영화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패셔너블한 란제리와 속옷들. 특히 심야의 소나기 신이 인상적이다.

 

에로보다는 해학 사극에 가까웠던 <빨간 앵두 3>(1986) 이후 이수진은 조금씩 진로를 수정한다. 이대근과 <오사까 대부>(1986)를, 최무룡과 <자유부인 2>(1986)를 찍은 그녀는 이후 액션이나 멜로 같은 장르에도 종종 나들이한다.

 

이수진의 필모그래피에서 독특함 점은 유난히 마초적 이미지의 남자 배우들과 맞추었던 파트너십이다.

 

데뷔작 <밤마다 천국>에서 유장현, 신영일, 김성겸 등 5명의 남자 배우와 대적(!)했던 그녀는 <빨간 앵두 3>의 김희라를 비롯해 1980년대 B급 에로 사극의 달인 문태선, 설명이 필요 없는 이대근, 태권도 선수 출신인 이동준 등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엔 하재영, 임영규, 한지일 같은 멜로 파트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남자 배우에게도 밀리지 않는 힘이 그녀에겐 있었다.

 

당대 마니아들이 이수진에게 열광했던 이유는 이전의 여배우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이중성 때문이었다. 그녀는 <집시 애마>의 이화란처럼 서구적이진 않지만 전형적인 한국적 마스크와도 거리가 멀었다.

 

세련되면서도 감정 표현에 매우 적절한 얼굴은 멜로드라마에 맞춤이었고, 쟈니 윤과 찍었던 <햄버거 쟈니>(1988)나 사극인 <호호전>(1988) 같은 영화를 보면 코미디에도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연기력도 좋은 편이었다. 만약 지금까지 활동했다면 브라운관의 카리스마 있는 중견배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갑작스러운 은퇴가 찾아왔다.

 

1990년 가수 설운도와 결혼한 그녀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연기자의 길을 떠나 3남매의 어머니로, 그리고 남편의 충실한 내조자와 작사가로 살아가고 있다.

 

6년 남짓한 활동 기간 동안 15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녀는 사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

 

다양한 가능성과 이미지를 지닌 마스크의 소유자였지만, 에로티시즘 일색이었던 1980년대에 데뷔했다는 게 어쩌면 불운이었다. 결혼과 함께 연기생활을 미련없이 접어버린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And

칠면조판 <언더독>

|

 

And

축구공을 찾아라!

|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