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사진'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9.05.14 대통령 추대 거절한 혁명가 '볼리바르' - 돈은 왜 받았을까?
  2. 2019.05.13 '김원봉'이 '김일성, 박정희'에게 버림받은 이유?
  3. 2019.05.12 1958년 명동의 어느 골목 - 아침 6시 40분
  4. 2019.04.30 어린이들에게 선전포고(?)하는 한국 목욕업 중앙회 - 1970년대
  5. 2019.04.20 죽음을 각오한(?), '이승만' 정권 시절의 통일 시위

대통령 추대 거절한 혁명가 '볼리바르' - 돈은 왜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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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이 '김일성, 박정희'에게 버림받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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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 100만원

김일성 - 2만원

박정희 - 혈서 쓴 다음, 무작정 매달림(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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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명동의 어느 골목 - 아침 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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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 선전포고(?)하는 한국 목욕업 중앙회 -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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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언제부터 때를 밀기 시작했는지는 서로 말이 달라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단군 이래 5천년간 꾸준히 밀어왔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는 이 땅에 이태리 타월이 등장한 1964년 전까진

지금처럼 때를 ‘박박’ 미는 버릇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웃나라 일본인들도 때를 민다 만다 논란이 없지 않고,

‘기원전 4세기에 알래스카의 6대왕 왕비 '콘드시엔비'가 전용 때밀이를 두었다’는 기록이

인터넷에 떠도는 걸 보면,

어디엔가 때를 미는 민족이 더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전문적으로 때만 밀어 먹고 사는

속칭 때밀이(정식 명칭은 ‘목욕 관리사’)가 성업중인 곳은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전국목욕업중앙회 조사 결과

현재 전국의 목욕탕 수는 9천4백여 개.

그 곳에서 일하는 때밀이만 3만에서 4만 명을 헤아린다는 게

한국목욕관리사협회의 추산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최초의 때밀이가 뉘신지는 알 길 없다.

 

다만 급격한 산업화로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한편

전통적인 공동체 의식이 붕괴되기 시작한 1970년 무렵

하나 둘 등장했다는 게 목욕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전에야 감히 때미는 데 돈 쓸 엄두를 못 냈거니와

입욕자간 때밀기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전통이 지켜졌기 때문에

굳이 목욕 관리사의 도움이 필요치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피부과/개원의/협회가 조사한 결과

한국 성인 남자 10명 중 6명, 여자는 10명 중 8명이 때를 미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면 거의 모든 국민이 민다고 봐야한다.

 

덕분에 한 달 평균 250~350만 원을 버는 때밀이가 유망 직종으로 급부상했다.

때미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만 전국에 50여 개다.

 

- 2009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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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각오한(?), '이승만' 정권 시절의 통일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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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에는 '죽엄'이 표준말(?)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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