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타샤 킨스키' 주연 <테스>의 홍보용 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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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는 영국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귀엽고 똑똑했으나 그녀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운명은 모질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가난하여 가정부로 취직하지만, 그 집 아들인 알렉에게 처녀성을 빼앗기고 말았다. 단 한 번의 관계로 테스는 사생아를 낳게 되었다.

 

주위의 비난과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그 불행한 아이는 곧 숨지고 말았다. 테스는 그 아이에게 '소로(슬픔)'라 이름 짓고, 자기 손으로 세례를 베푼 뒤 직접 땅에 묻었다.

 

테스는 집을 나와 고향에서 떨어진 농장에서 일을 했다. 그녀는 크나큰 슬픔을 경험했으나 아직 젊었다. 그녀를 목사의 아들인 클레아가 사랑하게 되었다. 테스도 클레아를 사랑하여 둘 사이는 아주 가까워졌다. 그러나 클레아의 구혼에 테스는 응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과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클레아의 애정은 테스로 하여금 자제력을 잃게 했다. 두 사람은 조용한 가운데 결혼식을 거행했다. 그날 밤, 클레아는 테스에게 서로의 죄를 고백하고 또한 용서하자고 제의하는 것이었다. 클레아는 남성이라면 흔히 짓기 쉬운 자기의 죄를 고백했다.

 

이에 용기를 얻은 테스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 일체를 고백했다. 테스의 고백을 듣고 클레아는 깜짝 놀라고 말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 매는 것이었다. 결국 테스는 결혼 자체가 무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클레아의 곁을 말없이 떠나 버리고 말았다.

 

테스의 가혹한 운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알렉이라는 사내가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끈질기게 테스를 설득하려 들었다. 테스는 못 이기는 척 그 감언이설에 넘어가기로 했다. 바로 그때 다시금 나타난 것이 클레아였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고 다시금 테스를 맞이하러 온 것이었다.

 

"이제는 너무 늦었어요" 하고 그녀는 괴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클레아를 떠나보낸 뒤 테스는 알렉을 찔러 죽이고, 클레아의 뒤를 쫓아갔다. 그러나 클레아를 만났을 때, 그녀를 추격해 온 경찰관들도 바싹 그녀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녀가 눈뜨게 될 동안만이라도 기다려 달라"고 클레아는 경찰관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 뒤 곧 감옥 지붕 위에 테스의 죽음을 알리는 검정 깃발이 펄럭펄럭 나부꼈다. 그 깃발이 나부끼는 형무소를 바라보면서 슬픔에 잠겨 있는 두 남녀가 있었다. 하나는 클레아였고, 다른 하나는 테스가 그에게 부탁한 동생 리자루였다.

 

- 원작소설의 줄거리

 

 

나스타샤 킨스키는 1961124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성격파 배우인 아버지 클라우스 킨스키와 그의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두 사람이 1968년에 이혼하는 바람에 아버지와는 어린시절에 헤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뮌헨에서 어렵게 살았으며 10대시절부터 모델로 활동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후 1975년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1976년에 제작된 거장 볼프강 피터젠이 연출한 TV 범죄영화 <위험한 관계>가 화제를 모으면서 이름을 알린 그녀는 그 여세를 몰아 그해 영국 호러물 <신의 딸>에 출연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 그녀는 리차드 위드마크, 크리스토퍼 리 등의 연기파 배우들과 공연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미개봉작이지만 비디오로는 출시되었다.

 

이어 1978년에 그녀는 유럽 최고의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공연한 <그대 머무는 곳에>에 출연하면서 파격적인 노출과 함께 대담한 연기로 관객들의 눈길을 모았다.

 

1979년에 드디어 그녀는 인생의 영화를 만나는데 바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스>. 이 영화는 1981년 아카데미영화상 6개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4개부문을 수상했고, 전세계적으로 흥행에도 성공하면서 나스타샤 킨스키는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테스>는 우리나라에서도 1981109일 명보극장에서 개봉되어 82일간 장기상영되어 무려 268,206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성과를 올리면서 나스타샤 킨스키는 인기스타로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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